2018년 5월 15일 화요일

[0805]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 1967년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기독교사상》(1967년)

[1] 신학적 입장의 변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유의 주가 되시며 만물이 그를 위하여 있고 그의 안에 서 있다는 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신앙이다. 그러므로 만물과 인간의 모든 사위(事爲)가 어느 것 하나 하나님 밖에서 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입장에서 구약에서는 개인생활에서나 국가나 사회생활에서나 하나님 관계에서 말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아브라함이 우르 지방에서 아람 방면으로 이사한 것도 하나님의 분부에 의한 것, 팔레스틴에 간 것, 이삭의 출생, 그를 결혼시킬 때 등등이 다 하나님 관계에서 되어졌다. 출애굽도 하나의 민족해방운동이었으나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 관계에서 진행되었으며, 지도자 모세는 그 운동을 온전히 하나님 관계에서 이해하며 진행시켰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침략, 사사시대의 지방 부족자치에 있어서도 정치,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모조리 하나님의 직접 간섭에서 되어진 것으로 이해되었다. 고대 신정제도였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기독교 신학의 기본 방향을 설정한 초석이다.

왕국 초기 사울 왕과 사무엘의 알력에서 왕권과 제사권과의 분리를 볼 수 있으나 그것은 물론 기능적인 분업관계요, 평행선적인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나 그 집행에서 직책을 달리하는 것이며,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었다. 왕국시대에 왕이 전횡하는 일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었으며, 예언자는 그런 것을 미리 경고하는 사람들이었다. 정치의 최고책임자인 왕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 직책을 감당하지 못하고 혹은 우졸(愚拙)하며, 혹은 횡포(橫暴)하고 불신앙적이어서 선민 전반의 개탄사(慨嘆事)가 되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에 간섭하셔서 옛날 모세 시대처럼 능력을 보여주시기를 바라는 심정이 날로 더하여졌다.

그래서 ‘여호와의 날’을 고대했으며 그것을 근거로 메시아 사상의 발전과 메시아 대망의 심정이 더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는 하나의 이상적인 왕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현시키는 왕권자임과 동시에 그가 세우는 나라는 공의와 인자가 바다에 물이 덮이듯이 체질화한 항구한 세계적인 왕국이란 것이었다. 포로 후 유대교에서 이 왕국의 체질을 정치적인 방향에서 율법주의적인 데로 변화시키려 했으나 일반 민중의 전통적인 신앙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런 배경에서였기 때문에 ‘그가 메시아인가?’ 하는 기대 아래서 그를 따르는 민중들의 마음속에는 각기 스스로의 ‘메시아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직접 정치적으로 로마에 대결하여 왕권을 발휘하려 하지 않는 데서 민중의 불만과 의혹은 더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메시아를 기칭(欺稱)한 모독자였다.” 하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 등의 선전에 민중이 동조하게 된 것이었다고 본다.

로마 가이사의 화상(畵像)이 박힌 은화를 보이면서 로마에의 납세 가부를 물었을 때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명답으로 유도 심문자를 아연케 한 일이 있다. 그것은 그가 가이사와 하나님을 일대일로 대립시켜 말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주권이 하나님의 것이나 그 아래서 가이사가 맡은 기능적 직책이 있고 종교를 맡은 자들의 직책이 있다. 가이사의 권력으로 손댈 수 없는 하나님께 성별된 영역이 있다. 이 두 가지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다 같이 심판받아야 할 책임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 후에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가 이때니이까?” 하고 물었을 때 그런 것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세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 다만 너희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는 때 권능을 얻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도 직접적인 정치행위가 아닌 인간 변혁, 즉 선교에 의한 하나님 나라 부식(扶植)에 전력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오순절 이후 오직 선교에만 몰두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그 방향이 더욱 철저하다. 그는 로마제국의 후패(朽敗)한 불신 세계와 교회의 거듭난 새 인간의 성결한 생명의 세계와를 대조하여 진노의 대상과 축복의 대상을 명시했다. 그는 세상과 교회,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욕정의 세계와 신성한 사랑의 세계를 극적으로 대립시킨다. 그는 정치, 경제 등등에 거의 무관심할 정도였으며, 오직 그리스도 전파만이 그의 삶의 전부요, 또 죽음의 의미라고 확신했다. 박해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313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교(公敎)로 공포되어 교회와 교직자에게 특권이 주어진 때부터는 정치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가 일변했다. 말하자면 가이사가 교회 안에 들어와 스스로 교회의 권력의 반쯤을 차지하게 되고 교회와 교직자 또한 가이사의 권력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타원형같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가 교회에 들어옴과 동시에 교회가 정치에 들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하면서 소위 ‘기독교 왕국들’을 형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서는 교회의 순결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이 있고 정치 분리가 있어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유럽의 국교제도와 미국의 자유교회 제도가 다소 다른 바 있다 할지라도 그 실질에 있어서는 혼동 아닌 협력의 방향으로 낙착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를 지내는 가운데 과학과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근대 국가주의의 발흥, 공산주의의 연소(燃燒) 등등으로 세속 왕권은 무적의 거인같이 날로 비대해지고 교회는 쫓기고 몰려서 한 구석에 농성(籠城)하여 여명(餘明)이라도 보존하려는 궁색에 빠지게 되었다. 더욱이 서로 통일이 없는, 지리멸렬한 분파로 고립된 교회 자체의 비참은 뜻있는 신도의 묵과를 허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계교회운동이 일어나고 이 강력하고 급변하는 세속사회에 대해 교회가 취할 일치된 태세를 함께 연구 실천하게 된 것이다. 우선 정치란 것은 정세에 따라 변화무쌍한 것이므로 기독교에서 정치에 대하는 태도는 고정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의 대(對) 정치태도는 그 시대의 실정, 즉 팔레스타인 빈농사회와 바리새적인 종교 권력과 로마 식민지로서의 피압박 민족이라는 조건하에서 고려된 최선의 가능한 것이었으며, 바울의 경우 역시 그렇다.

세계를 장악한 로마 판도 안에서 한갓 무명의 유대인, 그리고 유대교와 헬라 문화와 로마법 치하에 있는 한 미미한 소수 그룹으로서의 기독교회가 힘으로 대결하는 세속정치에 ‘머들인(muddlein)’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후 소위 ‘콘스탄틴 시대’의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정치에 개입당한 것도 그 시대적 정황에서 취해진 최선의 실제적 가능성에서 생기(生起)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근대 산업 사회에서 이만큼 한 세계교회의 실력을 가지고 이 세계에 대할 경우에 어떤 방향과 방법을 취할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 결정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 그 신학적인 입장은 무엇인가? 우리는 창조주시며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이 세상 일이나 장래 일이나 하늘 위나 하늘 아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것임을 재확인한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과학, 철학, 예술, 종교 할 것 없이 다 하나님의 일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 한다. 하나님을 교회 안에 유폐하는 사고방식을 수정하자는 방향이다.

그리스도에 관하여서도 그렇다. 유대교에서 메시아를 정치적으로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치를 정화, 완성하기 위한 이상적 치자를 대망한 것이어서 그것 자체를 나무랄 것은 없다. 다만 세속적인 제국을 몽상한 일부 약점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이 그 당시에 인간성 갱신의 근본에 전력한 것은 그것이 진정한 정치, 경제, 문화 등의 기본 바탕을 조성하려는 것이요, 정치, 경제 등 이 세상에서의 생활 조건을 전적으로 소외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바울이 소극적인 태도에서나마 “모든 사람은 위에 있는 권력에 복종하라. 대개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권위가 없는 것이며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롬 13:1~2)라고 한 것은 정치를 신학적으로 규정한 원칙적인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그의 서한에서 그리스도의 권위에 대한 거대한 스케일을 본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케 하셨다.”(엡 1:21)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고 그의 안에 선다.”(골 1:16)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마감 말씀이라는 구절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는 구절이 있다.(마 28:18) 그렇다면 이 땅의 정권 따위가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될 까닭이 없으며, 역사는 반드시 절대주권 앞에 심판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람은 정사에 참여하여 거기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세계 교회에서는 신자로서 정치에 무관심하여 스스로 초연을 자랑하는 것은 게으른 종으로서의 저주 아래 있게 될 것임을 말했다.

[2] 정치의 성격

그런데 정치란 것은 조직된 권력을 통하여 인간생활 전반을 통어(統禦)하는 기능이므로 신중 정확한 합리적인 전문 지식을 요함과 동시에 전 국민에게 직접 관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 전문적인 정치인일 수는 없으나 어느 누구도 이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의 생활 중 어느 하나도 정치에서 제외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금(現今)의 정치는 국가 단위임과 동시에 국제 관련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경제력과 기술에 의한 산업건설에 얽히지 않고서 정치를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현실과 이해를 주축으로 정치는 운영된다. 크리스찬에게 고귀한 이념이 있다해도 이런 정치 실상을 도외시하고 정치를 운위할 수는 없다.

정치가 법과 기구와 강제력을 삼위일체로 삼는 한, 추상적 또는 감정적인 사랑과 무제한 용서 등 개인적 미덕을 이에 개입시켜 혼란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와 동시에 경제력 증강, 기술 수련, 공익 증진, 교육 진흥 등등의 효과적인 사업이 그대로 좋은 정치에의 지주가 되는 것이어서 일부 정치 전문가만이 정치를 전담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정치가 권력의 표징이어서 국가에 불가피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국민의 재산뿐 아니라, 생명 자체까지도 강요할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권력이 ‘민간지지(民間支持)’라는 피라미드의 체구(體驅) 정상에 놓여 있는 일석(一石)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실공히 시인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특징이며 장점이라는 것을 또한 밝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크리스찬의 정치 참여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찬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일반 국민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 하나 특기할 점이 있어야 한다.

1) 그 첫째는 정치 결단에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이나, 특히 크리스찬은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정신에 비추어 더 넓은 시야와 더 높은 목표, 그리고 거기 이르는 바른 코스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실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윤리기준이 있고 원리원칙이 있는 것이어서 이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경우에는 감연(敢然)히 “아니오” 할 수 있는 원리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당 말기 부정선거 때에 각료에도 신자가 많았으나 그것을 “아니오” 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방향 지시에 대한 책임을 깨닫지 못한 탓이었다고 본다.

자유와 인간 존엄을 지키려는 신념, 폭력보다도 설득, 법보다도 교화, 전쟁보다도 평화, 전 국민에게 균점(均霑)된 복지를 위한 노력, 부정부패에의 도전, 지배욕보다도 봉사와 창조 의욕의 조장 등등 언제나 불멸의 ‘비전’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크리스찬의 정치 참여에서 특이한 공헌일 것이다.

2) 정치란 권력과 그 행사를 욕구하는 가장 노골적인 분야니만큼 여와 야가 극을 달려 국가 민족에 실질적인 분열과 적의를 조성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런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조정하여 다 함께 국가융흥(國家隆興)에 이바지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하여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직책을 사명으로 느끼는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하여튼 크리스찬이 정치 참여에서 이 화해의 중매자직을 담당한다는 것은 제 격에 맞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영예로운 타협’의 명수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3) 자본과 기술이 왕좌를 점하고 근본 되는 인간 문제가 권외로 밀려나는 근대 산업사회에 있어서 크리스찬 정치인은 인간의 정신적・도덕적인 면에 언제나 유의하여 건전한 인간 조성 조건을 모든 정책에 반영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교회대회의 ‘교회와 사회 세계대회’에서 논의된 모든 합의내용이 많은 참고와 지침이 될 것을 확신한다. 현재 질서가 아무리 안정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크리스찬으로서 안주할 천국인 것같이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언제나 ‘야(野)’의 위치에서 공정한 비판을 가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가능한 최선의 개선책을 건설적으로 제공할 용의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승리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걸어야 하며 성서의 진리와 역사의 현실과를 끊임없이 대결시켜 그 대화에서 정치, 경제 등의 복잡에서 초래되는 혼미를 면하고 과학적인 분석에서 최선의 합리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조직 교회를 떠나도 좋다는 심경이 조작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는 세상의 중심이며, 또 그 충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가 꼭 들어맞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이 몸이라면 교회는 그의 폐와 심장과 같아서 사지백체(四肢百體)에 피를 보내고 그 피들이 봉사하는 중에 오염된 것을 정화하여 다시 순환시키는 호흡과 순환의 일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정치인일수록 이런 영(靈)의 갱신 작용에 의거하는 바 커야 할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찬은 언제나 개인적인 경건에서 만족을 느끼고 구조적인 개혁과 건설에 등한하기가 쉽다. 옛날 예언자들이 그 메시지에서는 혁혁한 바 있으나 그 실효에서 거의 소득이 없던 것은 그들이 구조를 고쳐 나가는 데 착안하지 못한 소치가 아닐까 한다. 1966년 여름 교회와 사회 세계 대회에서도 이에 대한 심오하고 유익한 논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법 이전의 도덕적 계몽과 구조를 몸으로 한 법과 강제력의 거점 설치와는 상반이라기보다도 몸과 마음처럼 함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점에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가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기 위한 폭력 혁명의 전선을 걸어도 좋으냐 하는 논의가 생긴다. 가장 근본적인 혁명이 인간성 갱신의 혁명이니만큼 크리스찬으로서 혁명이라는 어휘에 놀랄 것은 없다. 그러나 진정 최악의 경우가 아닌 일종의 폭도적인 봉기에 크리스찬이 일일이 움직여야 할 이유는 물론 없는 것이다. 하여간 지배를 위한 소수의 그룹 신화(神化)는 우상숭배며, 인간 죄악의 결실이므로 이를 파괴하는 것은 크리스찬의 사명에 속한다 하겠다. 가령 히틀러나 나치 정권이나 공산독재 같은 것은 원칙적으로 시인할 수 없는 것이며 악질적인 자본주의도 그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하는 방법은 고정적인 하나만이 아닐 것이므로 그 정황에 따라 수급(綬急), 현은(現隱)의 차가 있을 것이다.

[4] 한국 교회로서의 정치 참여의 실제

일제시대의 한국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려 할지라도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혹 애국자의 독립운동이 있었으나 그것은 그 교회의 교인 중에 그런 분들이 있어서 그들의 민족적 정열이 바로 된 것뿐이요, 조직체로서의 교회 자체가 그것을 주된 사명으로 공인한 결과로 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 후에 많은 신도가 정치에 참여했었으나 그 참여의식과 목표가 명백하지 않았다. 교회로서도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료, 국회의원 등등에 교인이 많다는 의미에서 자연 감정적인 호의와 변호를 제공했을 뿐이요, 엄숙하고 명백하게 그 내용이 천명된 사명감에서 사고나 행동을 추진시킨 일은 거의 없었다. 대사건의 위기적인 결단에서 크리스찬이기 때문에 단호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따라서 정치 참여의 의미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기독교 정당을 만들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정치란 반드시 도덕적인 것도 아니며, 전혀 부패와 결탁하지 아니할 수도 없다. 정치는 집권욕이 중심이 되며, 따라서 집권을 위한 방법에는 크게 구애됨 없기를 바라는 것이 상습이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는 강한 도덕적 판단을 무기로 사용하지만 자파(自派)의 도덕적 책임에는 몹시 교만한 도피구를 마련한다.

그런 와중에서 기독교인이 하나의 기독교를 간판으로 한 정당을 가지려 할 때 그 실제 문제에 심각한 난점들이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정당으로서의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청렴결백한 방법만으로 가능한가 하면 그것은 탁상공론이다. 따라서 독을 함께 마신다면 다음에 오는 타방(他方)으로부터의 도덕적 강타에 무엇으로 대답할 것인가? 일반인들은 기독교 정당과 기독교를 일치시키며, 그것과 교회를 또한 일치시킨다. 따라서 기독교 정당의 남기는 기록은 그대로 기독교 자체와 교회의 기록과 일치되어 불필요하게 기독교와 교회의 위신을 타락시킨다.

다음으로 기독교라 해서 하나하나의 구체적 현실을 요리하는 정치 시책에 일일이 특수한 프로그램을 미리부터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당면하는 정치 과제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정당으로부터 온전히 탈출하여 기독교인만으로 뭉쳐야 할 이유가 희박해진다. 그리하면 세속적인 정당은 기독교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와의 대립의식이 두드러지게 될 것이며, 그 안에서 기독교적 향기를 전할 사람도 없게 된다. 동시에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기독교 정당이 아무리 뭉친다 해도 정권을 잡을 만큼 비대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오히려 함께 몰려 무시받는 대상이 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와 같이 정책 차이로 정당이 갈라졌다면 기독교인도 정책면에서 각자의 소속 정당을 택하고 그 안에서 당에 충성함과 함께 기독교적 비전을 실현하는 데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하겠다. 기독교 정당이 온전히 비권력욕을 바탕으로 예언자적인 발언을 위주로 하며, 기독교적인 이상을 밝혀 올바른 정치 방향을 외치는 것만으로 그 존재 목적을 다한 다른 이상론도 없지 않으나 그런 고매한 정치인이라면 어느 정당에서라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요는 뭉쳐서 더 많은 추태를 벌일 가능성이 그 반대의 가능성보다 더 많다는 데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은 헌법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택했으며, 국가로서는 세속국가요, 교회로서는 자유 교회로 되어 있다. 정치활동에 개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인으로서 정치에 헌신하여 국가에 봉사하며 국민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은 장려해야 한다. 교직자는 교회 봉사에 전적으로 바친 사람이니만큼 교인의 신앙과 정신면에 훈육자적 책임을 다하고 교인의 정치 기타 활동에 비전을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없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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