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81) 평양 3년 – 동굴 속에서
그때 우리 식구는 여섯이었다. ‘숭상’을 그만두는 순간 ‘절량가족’으로 전락했다. 집 주인인 김은석 씨가 집세 없이 있으라 한다.
까마귀 물어다 주는 빵부스러기로 연명했다는 엘리야의 기적을 또 다시 되새겼다.
나는 아무에게도 구차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데도 편지 낸 일이 없다.
그런데 하루는 미국 피쯔벅 옛 친구 ‘촬스 리 로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삼년 전에 내가 평양 있다는 걸 알리고서는 일체 통신이 없었다. 그건 내쪽에서 회답을 줄곳 빼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와의 친교를 끊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교회에 바칠 십일조 헌금을 내게 보내려고 모아 둔것이라면서 매달 이십불씩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십불이면 그땠돈 사십원이니까 식구 여섯이 입에 풀칠할만은 했다.
나는 그때 일제(日帝)의 신사참배 강요는 초대교회 때 로마황제 예배 강요와 유(類)를 같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제예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초대신자들의 모습을 사모했다.
나는 평양신학 도서실에서 『성자열전』(story of the saints) 오십여권을 한 번에 두세 책씩 빌려다 읽었다. 그 중에서 우리와 비슷한 경우에 순교한 분들을 골라 『순교자열전』을 쓰기 시작했다. 원고지 살 돈도 없어서 잘못 쓴데를 도베질 하면서 날마다 여념없이 써 갔다. 원고지 천매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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