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범용기 제2권] (6)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조선신학원 다시 열고

[범용기 제2권] (6)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조선신학원 다시 열고


물론 전필순과 윤인구에게서 회답이 올리는 없다. 우리는 다시 새로된 이사회를 열고 실무진을 짰다.

이사장 : 함태영
설립자 : 김영철
이사회 서기 : 김재준
이사 : 주로 서울노회 원로급 목사님들
학원장 : 김재준 등등

나는 “해봅시다.”하고 학원장직을 승낙했다.

곧 김천교회 ‘만우’형에게 알렸다. ‘만우’의 회답은 분격에 넘치는 나무람이었다.

“설립자는 누구고 이사장은 누구고 원장은 누구였더냐? 모두 서울교계의 중진이 아니었더냐? 그런데 이때까지 한마디 말없이 내버려 뒀다가 이제 다 죽은 송장을 ‘장공’더러 건사하란 말이냐? 신학원은 벌써 총독부 배속에 들어갔지 않느냐? ‘장공’이 그걸 맡는다면 ‘호박쓰고 돼지 굴에 들어가는 것이다. …….”

그러나 나는 “이미 맡아버렸으니 이제 와서 ‘번의’할 수도 없고, 어려울 때 하느님이 도우실 것으로 믿는다….”고 회답했다.

어쨌든, 이런 충고는 ‘참 친구’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흐뭇해졌다.

그래서 일본 기독교 정동 교회당에 옮겨, 해방될 때까지 거기서 가르쳤다.

연분관계로 끝까지 윤인구와 같이 있던 경상도 출신 학생들도 추후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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