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71) 평양 3년 – 신사참배
‘숭상’ 제3년은 풍운(風雲)의 날들이었다. 일본 군국주의가 삶 전체를 돌격해 왔다.
공사립 막론하고 학원은 완전히 관청 통제아래 들어갔다. 군사훈련이 모든 ‘스포츠’에 대체되었다. 퇴역장교가 강제로 각 학교에 배속되었다.
그들 보기에는 교회의 신교자유가 아니꼬왔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예외없이 신사에 참배하라고 도지사가 선포한다. 목사들이 ‘신사참배 곧 우상숭배’라는 관점에서 이를 거부하자 경찰에서는 일변 설득, 일변 탄압으로 대결했다.
기독교 학교가 무너졌다. 학교는 관청에 직접 지배되는 기관이었다. 교장과 교사의 임면이 모두 허가제였고 교과목 배정도 관의 정한대로였다. 그러므로 교장 인솔하에 교직원 학생 모두 신사에 참배하라는 관청지시에 거역하고서도 학교를 해갈 수 있는 학원은 하나도 없었다.
선교사 경영의 평양신학교는 자진 폐문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돌아갈 채비에 바빴다.
당시 산정째 교회 담임목사로 있던 송창근 박사도 강경파였다. 설교라면 의례 그 속에 신사 참배 반대 내용이 도사리고 있었다. 조선인 형사 두 셋이 항시 따라 다녔다. 그래도 ‘연행’하는 일은 없었다.
평양신학교 학생회에서는 폐문하기 직전에 주기철 목사를 초청하여 특별집회를 열었다. 그는 신사참배 곧 우상숭배란 입장에서 ‘일사를 각오한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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