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68) 평양 3년 – 뜰까하던 자리

[범용기] (68) 평양 3년 – 뜰까하던 자리


‘숭상’에서 한 학기 지내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신천신성중학교 장리욱 교장이 가을부터 그리로 오라고 교섭해 왔다. 함흥 영생중학교에서도 같은 교섭이 왔다. 나는 ‘만우’ 형과 동행 선천에 가 보았었다. 빽 돌려 막힌 분지의 ‘교회왕국’이었다.

답답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어서 생동하는 데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거기서 백영렵, 한경직 등과 며칠 같이 지냈다.

평양에 돌아왔을 때 남궁혁, 채필근 등 선배가 내 행동에 눈치채고 선후책을 마련한 모양이었다.

그때 남궁혁 박사는 평양신학교 신약학 교수로 신학교 기관지인 ‘신학지남’ 편집 책임자겸 주필로 있었다. 그는 내게 ‘신학지남’ 편집 실무를 맡기고 한달에 이십원씩 사례금을 준다고 했다. 동시에 채필근, 송창근, 한경직, 그리고 나 네 사람을 동인(同人) 겪의 contributor로 해서 매호 의무적으로 글을 발표하게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눌러 앉았다.

남궁혁 박사님은 ‘평신’ 교수로서는 liberal한 켠이었고 소탈하면서도 어른다운 ‘보스’ 풍격의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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