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62) 돌아와 보니 – 김태훈 장로님

[범용기] (62) 돌아와 보니 – 김태훈 장로님


내가 미국가 있는 동안 경흥읍 교회에는 ‘김태훈 장로님 사건’이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경흥읍 교회는 애국지사들의 개화운동 초기에 세워진 오랜 교회로서 채필근 목사가 동경 유학 때까지 십년 이상 목회했고 그를 이어 김관식 목사님이 캐나다 유학 때까지 목회했다.

김태훈 장로님은 창설장로로서 경흥교회 ‘주인’이랄만 했다. 그는 목사 받드는 겸혼, 교회 섬기는 충성, 개척전도의 열성, 젊은이들에 대한 기대와 사랑 등등 – 신앙과 덕행의 ‘심볼’이었다. 나도 청년 때, 간혹 경흥읍에 들리면, 으레 김장로님 댁에 유숙했다. 그는 손수 밥상을 들어다 놓고 기도하고 성경말씀으로 격려하곤 하셨다. 내가 서울서 돌아와 귀낙동에 소학교 세우고 마감녁에 교회를 시작할 때에도 김장로님이 사십리 길을 걸어오셔서 한 달에 두 세 번 돌봐 주셨다. 처음에는 모일데 없어 버들숲, 시냇가에서 두 세 번 같이 기도하고 예배하셨다. 내가 작별인사 드리고 미국 떠날 때, 그는 십리 길을 같이 걸어 언덕 위까지 오셨다. 그는 길가에 꿇어 앉아 나를 축복해 주시고 내 모습 안 보일 때까지 서 계셨다. 나는 그이를 내 ‘교부’(敎父)같이 존경했다. 그런데 내가 미국서 돌아왔을 때 그는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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