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108) 조선신학원 발족 – 진영과 학생
윤인구가 원장 실무를 보았고 그 밖의 일은 내가 모두 맡았다. 학감일, 교무주임 일에서부터 서무, 재무, 회계, 소사 - ‘만사도감이다’. 그리고 교수 시간도 제일 많았다. 구약은 물론이고 교수 시간도 신약, 교회사, 실천신학, … 닥치는 데로 메꾸어갔다.
학생들은 열심이었고 모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졸업연한은 3년
교수 용어는 조선어
대략 이런 내용과 진용이었다.
교수 용어는 조선어
대략 이런 내용과 진용이었다.
모여온 학생들은 백명 이상이었다. 평양이나 다른 신학교에서 이삼년 공부한 사람은 3학년에 그 나머지는 모두 2학년에 넣었다. 학생의 대부분은 장년들이었고 사오십대, 이십대 청년들도 얼마 있었고, 사오십대 장로님인 충북의 김영주, 이창재 등도 충실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칠십대도 한 분 계셨다. 시인 임인수(林仁洙)도 끼어 있었다. 그는 그때 벌써 동아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시로 당선되어 있었고 신학생으로는 최연소자였다.
일제(日帝)의 의용군 모집에 반대하여 몰래 전국을 유세하다가 잡혀 6개월 징역하고 나온 경기도 파주군의 박학수(朴學洙) 군과 그의 친구 이춘우 군도 학생으로 등록했다.
승동교회 담장밑, 회랑(回廊)을 기숙사로 썼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